2025. 10. 23. 08:00ㆍ여운이 머무는 자리(에세이)
발자취 | 감성 에세이
일요일 아침, 출근길.
잠이 덜 깬 사람들 사이로 바람이 스친다.
바쁘게 걷던 내 앞에서 작은 언성이 들렸다.
처음엔 모녀로 보였다.
하지만 몇 걸음 뒤, 진실은 달랐다.

친구처럼, 어머니처럼
둘은 대화를 넘어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한쪽은 레깅스를 입고 몸에 딱 붙는 상의,
운동화에 단정한 포니테일.
4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다른 한쪽은 대조적이었다.
짙은 파마머리, 편한 바지, 아무렇게 걸친 겉옷.
누가 봐도 ‘우리 엄마 세대’였다.
나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늦췄다.
‘모녀가 싸우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스쳤는데,
잠시 뒤 들려온 말이 내 추측을 깨뜨렸다.
“야, 네 손자 이번에 감기 걸렸다며?”
순간 고개가 돌아갔다.
둘은 ‘친구’였다.
한쪽은 손자가 있는 할머니,
다른 한쪽은 그 손자의 친구 할머니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한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온 사람’ 같았다.
세월을 비껴간다는 것
그 장면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한 사람은 세월을 정면으로 받아낸 듯했고,
한 사람은 세월을 밀어내고 있었다.
둘 다 같은 나이대였지만,
삶의 속도는 달라 보였다.

레깅스를 입은 여자는 젊은 기운이 흘렀다.
눈가 주름조차 정돈되어 있었고,
자세엔 확신이 있었다.
운동을 하는 사람 특유의 리듬.
‘관리된 나이 듦’이란 게 이런 걸까 싶었다.
반면 다른 이는 더 익숙한 풍경이었다.
시장 장바구니, 어깨에 걸린 얇은 가디건,
세월의 흔적이 묻은 손등.
그러나 그 얼굴에는 묘한 평안이 있었다.
그냥 그렇게 살아온 세월의 무게.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요즘은 몸 관리 잘해야 돼.”
“나는 그럴 시간도, 돈도 없어.”
짧은 대화였지만,
그 안엔 두 인생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월은 공평하지만,
그 공평함을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 일본 심리학자 하라다 마키, 시간의 얼굴 (2019)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그들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한 명은 젊음을 유지했고,
다른 한 명은 젊음을 놓았다.
둘 다 ‘자기 선택’이었다.
나는 어떤 얼굴로 늙어가고 있을까
출근길의 그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보일까?’
그 질문이 오래 남았다.

세월은 모두에게 흐르지만,
그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몸을 관리하며 시간을 늦추고,
누군가는 흐름에 몸을 맡긴다.
둘 다 틀리지 않다.
다만 선택의 결과가 다를 뿐이다.
젊음을 지키려는 사람은
삶을 미루지 않고 끊임없이 부딪힌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
그건 화장품이나 운동이 아니라 ‘의지’다.
반대로 세월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 안의 평화를 선택한다.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는 태도.
그건 나이보다 훨씬 더 단단한 아름다움이다.
길 위에서 그 둘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누구의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만 분명한 건 —
둘 다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라면 대신 곤드레밥 — 그리고 7년의 시간 속에서 배운 것들
발자취 | 건강 에세이“식탁 위의 한 끼가, 인생의 균형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밥 한 그릇의 기억》 Ep.11️⃣ 식당의 문을 열며점심시간.사람들은 기대와 허기 사이에 서 있었다.문을 열자
xn--ih3bm3sh5e.com
이심전심(以心傳心), 말보다 마음으로 전하는 진심
발자취 | 마음의 균형을 배우는 글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직장인의 하루.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통해 진심이 통하는 순간과 공감의 힘을 돌아보는 인문 에세이.《균형의 길》 Ep.2마음이
tenma0191.tistory.com
오늘의 한마디
“세월은 누구에게나 흐르지만,
그걸 견디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면책 안내
이 글은 개인의 관찰과 감정을 담은 감성 에세이입니다.
외모나 나이와 관련된 평가는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모든 묘사는 ‘세월을 바라보는 시선’의 은유로 사용되었습니다.
'여운이 머무는 자리(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변하지 않은 대화의 자리 (0) | 2025.10.29 |
|---|---|
| 그대의 빈 자리 — 떠난 후에도 머무는 마음 (0) | 2025.10.25 |
| 일요일 아침,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기록 (3) | 2025.10.22 |
| 오늘도 누락 고맙다, 네이버! 누락 덕분에, 다시 쓰는 나 (0) | 2025.10.19 |
| 잠이 든 밤, 말하지 못한 마음 (0) | 2025.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