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지닌 자

2025. 11. 2. 20:34냄새로 버티는 남자

청주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균열 경보가 하루에 세 번씩 울렸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오늘은 냄새가 달랐다.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바람 속에 섞인 금속 냄새가 심장을 쳤다.
그 냄새는 멀리서,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흘러왔다.
그의 가슴에 박힌 문양이 미세하게 떨렸다.
균열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 폐허가 된 공단 골목으로 들어섰다.
벽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땅엔 오래된 피가 굳어 있었다.
그 위를 걸을 때마다 문양이 더 밝게 빛났다.

“네가 그 문이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협회 제복을 입고 있었다.
옷은 깨끗했지만 눈빛은 오래 썩은 쇠 같았다.

“임도현. 살아 있긴 하군.”

그는 총을 들지 않았다. 대신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당신 기록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됐어.”

도현은 종이를 바라봤다. 이름, 등급, 그리고 붉은 도장 하나.
사망 — 2030년 4월 12일, 청주.
그는 웃었다.

“죽었는데 왜 냄새가 나죠?”
“그건 당신이 아직 덜 죽어서지.”

협회 요원은 천천히 뒤돌았다.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균열이 도시 아래까지 번지고 있어.
문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닫을 수도 없지.”

요원이 떠난 뒤에도 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 속에 묘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수백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

“도현, 여기가 출구야.”
“도현, 들어와.”
“우리와 함께 숨 쉬어.”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아니라 문이었다.
그 문은 이제 살아 있었다.
피로 박동하고, 목소리로 말하며, 세상의 냄새를 빨아들였다.
도현은 그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닫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열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사라졌다.
살 냄새가 옅어지고, 기억의 향기가 바래갔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누군가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다면,
자신이 사라지는 건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밤이 깊었다.
공단의 전등이 하나둘 꺼지고,
청주의 하늘에 작은 균열 하나가 피었다.
그 빛은 검지 않았고, 처음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문양이 그에 맞춰 뛰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야 숨을 쉬는구나.”

그는 그 빛을 향해 걸었다.
발자국마다 냄새가 피었다.
기름, 피, 흙,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냄새.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도현이 있었다.
균열의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이제 됐어. 나로 충분하니까.”
문은 그의 심장을 삼켰고,
도시는 잠시, 완벽한 침묵에 잠겼다.
새벽이 찾아왔을 때,
청주의 공기엔 피도, 먼지도, 공포도 없었다.
대신 아주 미약한 냄새가 떠돌았다.
철과 흙 사이의 따뜻한 냄새.
살아 있는 냄새였다.
그리고 그 냄새는,
도시 전체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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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외곽의 폐공장은 숨을 쉬고 있었다.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공기에는 젖은 냄새가 떠돌았다. 녹슨 철판과 먼지가 썩은 피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도현은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은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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