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 10:28ㆍ냄새로 버티는 남자
문암생태공원은 새벽 다섯 시부터 소리를 낸다.
기계의 예열음, 먼 곳에서 울리는 화물차 경적, 그리고 균열 탐지 알람.
청주의 헌터들은 그 소리를 ‘아침 인사’라 부른다.
그러나 임도현에게 그건 인사가 아니라 ‘생존 신호’였다.
그는 낡은 방진마스크를 고쳐 쓰며 손목 단말기를 확인했다.
[D-428 헌터 임도현 / 등급: D / 길드: 청명]
출근 도장은 찍혔다. 이제 오늘 하루를 버티면 된다.
균열은 문암동 공단 옆 하천에 열렸다.
새벽이라 길엔 사람도 없고, 차들도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건 쓰레기차와 헌터 트럭뿐이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힐끗 보며 장비를 내렸다.
기계음, 철제 케이스 여닫는 소리, 냉기처럼 맴도는 피곤함.
도현은 조용히 코를 스쳤다.
기름 냄새 속에 섞인 쇠 냄새.
그리고… 썩은 풀 냄새.
그건 좋지 않았다.
균열이 오래 묵을수록 이런 냄새가 났다.
안에서 뭔가 ‘자라난다’는 뜻이었다.
“야, 임도현.”
뒤에서 팀장 박형수가 불렀다.
“오늘도 그 냄새 타령이냐?”
“오늘은 좀 다릅니다.”
“맨날 그렇다. 겁 많아서 냄새 핑계 대는 거지.”
형수는 비웃으며 안전핀을 풀었다.
“좋아. 겁나면 뒤에서 보조나 해.”
도현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D급의 말엔 설득력이 없다.
냄새를 맡는다고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이미 이 일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균열은 마치 물속처럼 일렁였다.
푸른빛이 도는 반투명한 막.
협회 요원이 외쳤다.
“청주 13번 균열, 진입 승인! 위험도 낮음, B급 지원 해제!”
지원 해제.
그 말에 도현의 손끝이 떨렸다.
B급이 빠졌다면 남은 건 C급 딜러와 D급 둘뿐이다.
이건 ‘작업’이 아니라 복불복 생존전이었다.
“들어간다!”
형수의 신호와 함께 모두 게이트로 걸어 들어갔다.
빛이 이마를 스치고, 시야가 꺾이듯 어두워졌다.
안은 썩은 정원 같았다.
습한 흙냄새에 곰팡이 냄새가 얹혀 있었다.
바닥에는 진흙과 녹이 낀 파이프들이 얽혀 있었고,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C급, 앞장서. 도현, 너는 감시.”
형수가 명령을 내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발밑의 흔적을 살폈다.
작은 발자국, 그리고 긁힌 흔적.
몬스터가 ‘어린 형태’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공기 속에 묘한 이상함이 스며들었다.
흙냄새와 썩은 냄새 사이에,
‘사람 땀’ 같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안에, 누가 있어요.”
“뭐?”
“사람 냄새가 납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형수가 코웃음을 쳤지만, 도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어둠 속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스으으윽—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기어 나왔다.
길이 2미터 남짓, 뱀처럼 생겼지만 다리가 있었다.
살갗이 젖은 듯 번들거리고,
등에는 녹슨 철판이 박혀 있었다.
“크립러! D급은 뒤로 빠져!”
딜러가 포효하듯 외치며 전면으로 나섰다.
형수는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몬스터의 속도는 인간의 예상을 넘어섰다.
철판이 튕겨 나가며 그들의 시야를 가렸고,
순식간에 C급 딜러의 목이 꺾였다.
핏방울이 공중에 흩어졌다.
그 피 냄새가 도현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세상이 멈췄다.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빛이 흐릿해지더니 공기 속에 목소리 하나가 떠올랐다.
“도현, 숨 쉬지 마.”
그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다.
낯선데, 분명히 자신이었다.
그리고 균열의 중심이 검은색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도현의 발밑이 꺼졌다.
땅이 아니라 ‘무언가의 입’처럼 벌어진 공간.
그는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지만,
그 칼날은 허공을 긁고 흩어졌다.
눈앞에는 또 다른 ‘임도현’이 서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 잿빛 눈동자.
그는 입술을 열었다.
“살고 싶다면, 문을 닫아.
이번엔 네가 닫을 차례야.”
그리고 그의 손에 검은 구슬 하나가 떨어졌다.
작은 심장이 뛰는 듯한 맥동.
도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밖에 나와 있었다.
게이트는 사라졌고, 형수와 다른 헌터들은 없었다.
협회 요원들이 달려와 물었다.
“생존자는 당신뿐입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말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남은 검은 결정체가 아직 뜨거웠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고요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균열을 바라봤다.
이미 닫혔지만, 냄새는 여전했다.
금속, 피, 그리고 자신.
도현은 마스크를 벗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또 열리겠지.”
그리고 짧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가 먼저 찾는다.”
그날 밤, 청주의 하늘에는
작은 균열 하나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도현의 심장박동에 맞춰.
다음 에피소드 👇
냄새로 버티는 남자
도현은 죽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헌터관리청 조사실, 창문 없는 회색 방.냄새는 싸구려 커피와 소독약 냄새.그는 그런 공기가 불편했다.이곳에는 피나 녹, 쇠, 먼지의 냄새가 없었다.**‘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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