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 18:33ㆍ냄새로 버티는 남자
청주 외곽의 폐공장은 숨을 쉬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공기에는 젖은 냄새가 떠돌았다. 녹슨 철판과 먼지가 썩은 피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도현은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은 재킷, 손에 닳은 칼 하나, 그리고 가슴 안에서 뛰는 낯선 맥박.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심장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모든 걸 냄새로 느꼈다. 공기 속의 쇠, 땅속의 곰팡이, 사람의 땀과 공포. 균열의 기운은 언제나 같은 냄새를 남겼다. 피가 굳어가는 냄새, 불타는 돌가루의 향, 그리고 그 사이에서만 느껴지는 문 냄새.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사이의 냄새였다.
그를 둘러싼 협회 요원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총의 기름 냄새와 가죽 장화의 땀 냄새가 도현의 후각에 또렷하게 박혔다.
“임도현, 협회의 명령이다. 움직이지 마.”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원의 목소리보다 더 강하게, 가슴 안의 결정이 진동하고 있었다. 손바닥이 뜨거워지고, 균열의 냄새가 밀려왔다. 쇠비린내와 먼지, 그리고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척.
바닥이 갈라졌다. 균열은 도현의 심장에 반응하듯 피어올랐다.
“도망쳐!”
누군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공기가 일그러지고, 문이 열렸다.
요원들의 총소리가 울렸지만 그 소리들은 공기 속에서 녹아 사라졌다. 균열 안에서 손이 나왔다. 그것은 인간의 손이었고, 아직 따뜻했다. 협회 요원의 이름표가 그 손목에 달려 있었다. 피 냄새가 폭발하듯 퍼졌다. 균열은 그것을 삼키며 커졌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균열은 피로 자란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만큼, 문은 더 깊어진다. 가슴이 불타는 듯했고, 숨이 끊겼다.
“닫아야 살아. 하지만 닫으면, 네가 사라진다.”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균열 속에서 들려오는, 자신 같은 목소리. 도현은 눈을 감았다.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 문을 그대로 두면 도시가 삼켜질 것이다.
그는 칼을 들고 가슴에 댔다.
“나는 문이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나로 닫아야겠지.”
칼끝이 살을 뚫었다. 피와 빛이 동시에 솟구쳤다. 심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폭발했다. 균열이 뒤집히며 안과 밖이 뒤섞였다. 요원들의 비명은 한순간 들렸다가 사라졌다. 피 냄새가 멈췄고, 바람도 멈췄다. 모든 것이 정지했다.
공장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도현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쓰러진 채로 숨을 고르며 천천히 눈을 떴다.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리듬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가슴 한가운데 검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은 미세하게 맥박을 쳤다.
“이제 문은 네 안에 있다.”
낯익은 속삭임이 귓속을 스쳤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공기 속에는 피와 흙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살아 있는 냄새였다.
그는 무너진 공장 지붕 너머로 스며드는 새벽빛을 올려다봤다.
몸은 피로했고, 가슴은 여전히 뜨거웠다. 하지만 그 열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번엔 버텼네.”
청주의 새벽 바람이 불어왔다. 먼 곳에서 균열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어딘가 불안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가슴 속의 문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균열의 냄새를 따라 발을 내디뎠다.
이번엔 피도, 명령도, 공포도 없었다. 오직 살아 있는 냄새뿐이었다.
그리고 그 냄새가 그를 또 다른 문으로 이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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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버티는 남자
도현은 죽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헌터관리청 조사실, 창문 없는 회색 방.냄새는 싸구려 커피와 소독약 냄새.그는 그런 공기가 불편했다.이곳에는 피나 녹, 쇠, 먼지의 냄새가 없었다.**‘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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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지닌 자
청주의 하늘은 잿빛이었다.균열 경보가 하루에 세 번씩 울렸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익숙해졌다.그러나 오늘은 냄새가 달랐다.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바람 속에 섞인 금속 냄새가 심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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