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 15:30ㆍ냄새로 버티는 남자
도현은 죽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헌터관리청 조사실, 창문 없는 회색 방.
냄새는 싸구려 커피와 소독약 냄새.
그는 그런 공기가 불편했다.
이곳에는 피나 녹, 쇠, 먼지의 냄새가 없었다.
‘살아 있는 냄새가 없다’는 건 그에게 곧 불안이었다.
“생존자 임도현 씨, 다시 묻습니다.”
조사관의 말이 흘렀다.
“게이트 내부에서 발생한 폭발의 원인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동료 세 명이 사망했고, 균열은 소멸했습니다. 단 한 명만 살아 돌아왔죠.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그의 말에 조사관은 눈썹을 찌푸렸다.
“운이라. 그 운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네요.”
조사관은 기록지를 덮었다.
“당분간 현장 출입 금지입니다. 정신과 검사를 받으세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끝이었다.
그는 탁자 위의 종이컵을 바라보며 느꼈다.
커피의 냄새 뒤에 묘하게 섞여 있는, 게이트의 잔향.
미약했지만 분명했다.
그 순간, 손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 안의 검은 결정체가 반응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서자, 저녁 공기가 눅눅했다.
청주의 공단 지대는 늘 기름 냄새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 냄새가 도현에게는 이상하게 안정감을 줬다.
‘이건 현실의 냄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다른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로 걷다 보면,
누군가의 뒤에서 문 냄새가 흘러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냄새.
곰팡이, 피, 그리고 불타는 돌가루의 냄새.
도현은 직감했다.
균열이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그는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물을 틀자 증기가 올랐다.
그 속에서 냄새가 피어올랐다.
비누 냄새 뒤에 섞인 금속과 흙의 냄새.
그건 욕실이 아니라, 게이트의 공기였다.
그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임도현’이 속삭였다.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네가 냄새로 찾아야 한다.”
결정체가 손바닥에서 흩어져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의 시야가 뒤집히며, 공기가 변했다.
욕실 바닥엔 검은 문양이 피처럼 번졌다.
그 문양에서 미세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게이트의 씨앗이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코끝에 냄새들이 맴돌았다.
시장의 생선 냄새, 공단의 윤활유 냄새, 사람의 땀 냄새.
그 사이사이로 문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여기 있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도현은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밤 2시, 청주의 골목으로 나섰다.
도로엔 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냄새를 따라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녹 냄새 — 오래된 철제 계단.
곰팡이 냄새 — 버려진 창고.
피 냄새 — 게이트의 잔향.
그는 걸음을 멈췄다.
낡은 간판이 달린 창고 앞이었다.
“천일금속.”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냄새가 폭발하듯 퍼졌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도현은 숨을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도현, 숨 쉬지 마.”
공기가 일렁이며 시야가 뒤집혔다.
문은 조용히 열렸고,
그 안에는 형체 없는 그림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의 냄새를 풍겼다.
죽은 헌터들의 잔향.
그는 몸을 떨며 뒷걸음질쳤다.
“살고 싶다면, 들어와.”
그 목소리가 귓속을 때렸다.
그는 결심했다.
살아야 한다면,
이 냄새의 끝을 확인해야 한다.
도현은 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게이트 내부는 고요했다.
피와 녹, 그리고 불타는 듯한 먼지 냄새.
그는 칼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중얼거렸다.
“이 냄새가 나를 살릴지, 죽일지는 모르겠지만…”
“버텨보자.”
한 걸음.
두 걸음.
공기가 무겁게 뒤틀렸다.
그의 손목이 뜨겁게 타오르며,
결정체의 빛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균열은, 그의 눈앞에서 다시 열렸다.
다음 날 아침,
청주 헌터관리청엔 또 한 번의 알림이 울렸다.
[비인가 게이트 개방 감지 – 문암공단 지역]
“생존자 임도현, 위치 불명.”
그러나 이미 그는 그곳에 없었다.
청주의 새벽 공기 속에서,
한 남자의 숨소리와
기름에 젖은 바람만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그는 냄새로 버티며,
또 다른 문을 찾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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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새벽, 그리고 문
문암생태공원은 새벽 다섯 시부터 소리를 낸다.기계의 예열음, 먼 곳에서 울리는 화물차 경적, 그리고 균열 탐지 알람.청주의 헌터들은 그 소리를 ‘아침 인사’라 부른다.그러나 임도현에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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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심장
청주 외곽의 폐공장은 숨을 쉬고 있었다.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공기에는 젖은 냄새가 떠돌았다. 녹슨 철판과 먼지가 썩은 피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도현은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은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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