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라는 시간의 끝에서
끊어낸 손, 남아버린 습관

몇 번이나 방황했는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끝이 정해져 있는 길을 알면서도, 나는 한동안 그 길을 다시 걷고 또 걸었다. 우리의 관계가 어떤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사랑인지 미련인지, 혼자서는 분간이 안 됐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묻기도 했다. 내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면, 상대는 잠깐 침묵하다가 결국 같은 말을 했다.
"그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지면 안 돼. 너만 힘들어질 뿐이야."
머리로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마음은 늘 한 박자 늦었다. 나는 그 한 박자를 붙잡고 살았다. 머리가 그만하라고 할 때 마음은 조금만 더 있자고 했고, 그 사이에서 나는 1년을 고민했다.
매일 같은 질문을 접었다 폈다. 오늘은 끝내자고 다짐했다가도, 내일은 그 다짐이 너무 성급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다 어느 날, 더는 변명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 사람 곁에서 버틴 내 시간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나는 나를 살리려고 그 관계를 접었다. 끊어낸 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던 내 습관이었다.
차단 버튼을 누른 순간이 결단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차단은 손가락 하나로 끝나지만, 마음의 뒤처리는 시간이 한다. 이번 주말도 그랬다.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으면, 시간이 괜히 길어진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일을 해도 마음이 비는 느낌 때문이다. 물을 끓이고, 밥을 먹고, 잠깐 잠들었다가 깼는데도 허전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허전함이 나를 휴대폰 쪽으로 밀었다.
내가 차단한 사람에게서 온 차단 메시지를 또 보고 있었다. 의미 없는 번호, 더는 볼 필요 없는 문장, 그런데도 내 눈은 그 글자들을 읽고 있었다. 한심하다고 느꼈다. 그 한심함이 또 나를 찌르고, 그 찌름이 다시 화면을 켜게 했다. 끊어낸 손이, 아직 끊어내지 못한 습관을 끌고 다녔다. 나도 모르게 “혹시”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혹시 그 사람도 힘들까, 혹시 내가 너무했을까, 혹시 내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그 “혹시”는 늘 같은 자리로 나를 되돌려 보냈다. 결국 나는 나를 지우며 관계를 연장하고 있었던 거였다.
| 구분 | 건강한 사랑 | 미련과 집착 |
| 마음 상태 |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 불안하고 의심이 든다 |
| 상대의 존재 |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 나를 자꾸 갉아먹는다 |
| 헤어진 후 | 슬프지만 앞날을 응원한다 | 현실을 부정하고 뒤를 캔다 |
| 나의 모습 | 자존감이 지켜진다 |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
7년의 무게와 허무의 바닥
7년이라는 시간은 쉽게 말로 줄어들지 않는다. 계절로 치면 스물여덟 번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었고, 하루로 치면 수천 번의 아침과 밤이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기준이 되었고, 서로의 변명이 되었고, 서로의 구멍이 되었다.
그래서 떠나고 나니, 빈자리가 아니라 구멍이 남았다. 메우려고 아무거나 밀어 넣으면 더 커지는 구멍. 나는 한동안 그 구멍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그때는 좋았잖아.” “그래도 나한텐 의미 있었잖아.” 그렇게 말할수록 구멍은 더 아프게 울렸다. 7년이라는 시간이 아까워서, 내가 쏟은 마음이 아까워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허무함은 오래된 벽지가 한꺼번에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왔다. 붙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떨어지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낡아 있었는지 보였다. ‘그동안 나는 뭘 붙잡고 있었던 걸까.’ 그 질문이 내 안의 바닥을 드러냈다.
7년이 허무했다는 말은, 그 시간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버텨온 것들, 내가 믿으려 했던 것들, 내가 정말로 웃었던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다만 그 모든 것 위에 쌓였던 마지막 결론이 허무였다는 뜻이다.
오래 버텼는데 끝이 “여긴 아니었어”라면, 그 결론은 사람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나는 그 비틀거림을 부끄러워했다. 왜 아직도 그 사람의 흔적을 찾는지, 왜 아직도 차단 메시지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정신 차려라”라는 말로 나를 다그쳤다. 그런데도 마음은 말을 듣지 않았다. 때로는 내가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버티던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관계 속에서 나는 늘 무언가를 견디는 사람이었고, 그 견딤이 내 정체성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니 견딤이 사라진 자리에, 나라는 사람이 잠깐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부끄러움만으로는 낫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나를 세우는 게 아니라, 나를 숨게 한다. 그래서 나는 숨지 않기로 했다. 나를 탓하는 대신, 내가 오래 살았던 시간의 습관을 이해해보려 했다. 7년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 마음이 결정을 해도, 몸은 그 결정을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내가 아직 흔들린다 해도, 그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는 아니다. 그저 오래 살아온 방식이 마지막으로 저항하는 과정일 뿐이다.
방황의 끝에서 배우는 단 하나
방황은 방향이 없는 걸음 같지만, 가끔은 방향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한동안 떠돌아다닌 건, 그 관계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접는다는 건 누군가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걸 알기까지 1년이 걸렸고, 그 뒤에도 수많은 주말이 필요했다. 밥을 먹다가도 멍하니 있고,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밤들을 건너야 했다.
이번 주말에 또 메시지를 본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내가 진짜로 앞으로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리라면 한심함도 없었을 테니까. 한심함은 변화의 통증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 화면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은 아무 편도 들지 않고, 누구도 붙잡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그 단순함이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지나갈 수 있을까. 그 사람을, 그 시간을, 그 허무를 나를 상처 내지 않으며 지나갈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7년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었고, 끝이 허무였다고 해서 나까지 허무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 관계가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어쩌면 삶은 관계보다 훨씬 고집이 세다. 내가 쓰러져도, 시간을 끌어도, 삶은 어김없이 다음 날을 데려온다.
그 다음 날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든다. 거창한 계획은 없다. 그저 작은 약속들을 지켜나갈 뿐이다.
| 실천할 일 | 내용 | 이유 |
| 메시지함 안 보기 | 차단 메시지 확인하지 않기 |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
| 몸 움직이기 | 하루 30분 걷거나 운동하기 | 잡생각을 없애고 잠을 잘 자기 위해 |
| 기록하기 | 답답한 마음 글로 쓰기 |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
오늘도 나는 조금씩 연습한다. 차단한 메시지를 다시 열어보지 않는 연습. 그 대신 내 하루를 여는 연습. 내 이름으로 살기 위한 작은 연습.
"돌아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빠른 걸음이 아니라,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마음이다."
언젠가 이 글이 ‘그때 참 많이 아팠지’라고 웃으며 읽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날이 아직 멀어도 괜찮다. 나는 이미 돌아서고 있으니까. 돌아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 마음이 쌓이면, 허무 위에도 길이 생긴다는 믿음이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 7년을 건넌 사람답게, 오래 가는 쪽으로.
오늘의 한마디
"지난 시간을 후회하느라 오늘을 버리지 말자. 이별은 끝이 아니라,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면책 고지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생각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모든 사람의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 수 있으며,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장합니다.